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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인생을 지탱하는 건 내가 들은 예쁜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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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 다닐 때 존재감이 거의 없는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자기 자리만 돌덩이처럼 지키고 앉아있거나 시끌벅적한 교실에서 조금 떨어진 도서실 구석에서나 발견되는 그런 학생 말이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내가 가진 능력을 보여주거나, 무언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주위에서 진심 어린 칭찬과 함께 너는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누구의 입에서도 '네가?' '넌 안돼'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는 지나가는 말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예쁜 말들은 내 가슴을 남몰래 두근거리게 만들었음을 고백한다. 비록 지독한 가난과 가정폭력 속에 보낸 유년시절이었지만 그때 그 사람들 덕분에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 덕분에 나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나를 믿고 나아갔고 그 길로 최고의 집단에서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 

 

이십 대 초반에 만난 나의 첫 남자 친구는 외국인이었는데 외모 콤플렉스가 극심해 얼굴뼈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싶어 하던 당시의 나에게 어느 날 거리에 붙은 화장품 광고 포스터를 가리키며 '저 포스터 속 사람도 예쁘지만 너도 예쁘다'라고 말해주었다. 내 못남을 알기에 그 말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했던 것과는 별개로 그 예쁜 말에 얼마나 위로받았는지 모른다. 하루는 카페에 앉아 내가 왜 성형수술을 하면 안 되는지 한참을 붙잡고 설득하기도 했고 우린 서로 마주 보며 울기까지 했다. 나중에 그 친구가 전 여자 친구를 확실히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만났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끝내 미워할 수 없었다. 그때 우리가 나눈 대화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만들어주었고 내 자존감의 밑바탕이 되었다(결국 내 얼굴뼈를 지켜냈다는 후일담도 전한다).

 

그러고 보면 말이라는 건 얼마나 중요한가. 불안하고 막막하기만 한 이십 대 끝자락에서 수없이 나를 다독이고 일으켜 세우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들은 예쁜 말들이다. 말을 예쁘게 했던 사람은 도저히 잊을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반면에 절대적으로 옳은 말(도대체 누구에게 옳은 말인가?)을 하는데 집중했던 것 같은 사람들은 의외로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기억에도 좋게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말로써 수없이 많은 상처를 냈다. 의견 다툼이 있을 때면 논쟁에 앞서 상대 의견에 대한 존중의 말을 덧붙이는데 인색했고, 직설적인 공격을 가하면서 쾌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자극적인 말이 상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상대를 변화시킬 거라고 굳게 믿었다.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옳은 말을 해야 한다고 믿었던 나는 일 년 전쯤 카네기의 대인관계론을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이렇게까지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의문을 시작으로 지금의 결론에 이르렀다.

 

결론은 카네기의 말이 맞았다. 말은 무조건 진심을 다해 상대가 듣기 좋게, 예쁘게 해야 한다. 내 입을 떠난 말은 그 즉시 생명을 부여받아 상대를 움직이고 동시에 내 귀에도 들린다. 내 말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에게 돌아온다(쌓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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