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소개
1. 나에게는 블로그 권태기가 안 올 줄 알았다. 위장기능과 우울감의 상관관계에 대한 글을 올리고 나서 찬 음식을 먹는 일을 의식적으로 줄였더니 며칠 만에 에너지가 샥 돌아서 의욕적으로 공부를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당장 뭘 공부할지에 대한 방향이 순식간에 잡히는 바람에 공부하는 데 온종일 시간을 쏟는 몇 주를 보냈다. 목표가 생기니까 자는 시간도 아깝고 아침에 눈도 너무 일찍 떠지고 해서 스스로도 좀 놀랐던 것 같다. 대입 이후로 무언가 다시 마음 쏟을 목표를 찾은 건 오랜만이었다. 그러면서 저절로 블로그에 소홀해진 것인데 그 와중에도 방문객 수는 꾸준히 체크하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내가 올려놓은 정보나 글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꾸준히 계셔서 신기하고 기뻤다. 무엇보다 구독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서 빠른 시일 내에 복귀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우울감이 떨쳐지니 글쓰기가 잘 안 되었다(내 블로그에 심난한 글이 많은 이유다). 학교 다닐 때는 전공이고 과제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썼지만 자발적으로 글을 꾸준히 쓰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우울은 작가의 친구인가, 역시 상처 받을 수 있는 가능성 vulnerability이 예술가를 만드는가, 뭐, 나는 뭣도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대략 그런 듯하다.
2. 나는 2년 째 스스로를 비건vegan으로 칭하고 완전 채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 산 28년의 세월 중 26 년 동안 이미 육식을 해온 바 있다. 그것도 아침 댓바람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는 종류의 인간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의 고통을 알게 모르게 묵인하고 동조하고 섭취해왔는가. 엄마는 고기를 동물로 의심하는 꼬꼬마적 나에게 인간을 위해 죽은 동물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나를 어르고 달래며 고기를 먹였다(엄마 나 다 기억해). 남은 인생이야 내 몫이라 쳐도 이미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다. 비종교인으로서 내세의 존재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영양가 있는 채소, 이왕이면 슈퍼푸드 케일로 태어나서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희의 먹이에서 세포가 되고 면역력이 되어서 푸른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지켜줄게, 하고. 열대우림이 대부분 파괴돼서 다음 생까지 지구가 남아날지까지는 장담 못하겠지만, 말이다.
3.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나와 매일같이 업무상의 이유로 그럭저럭 잘 지냈던 사람이 둘 있다. 한 명은 여자고 한 명은 남자인데 각각 내 인생에서 다른 시기에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지만 나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으로 기억되는데 두 사람 다 내게 '주관이 너무 강하다'는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는 점이다. 나는 주관이 뚜렷한 모습을 딱히 보여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몇 년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평가를 들은 것이 조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이(두 사람 다 나보다 어렸다) 나를 멋대로 휘둘러보려다 잘 안되니까 이런 말을 구시렁대는군? 그 와중에도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네' 싶어 곱씹을수록 픽픽 웃음이 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주관'이라는 게 내 인생을 버겁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은 고민이 뒤따랐다(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하는 일이 잘 안풀려서 엄한 데 가서 머리채 잡은 것 같다). 그냥 쉽게 쉽게 갈 수도 있었는데 매사에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어떤 식으로든 대처를 하는 편이기 때문에 윗사람들을 많이 잃었다. 문화예술계 성추문과 미투운동이 대한민국을 뒤집어놓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졸업 후 직업훈련을 받았던 학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고 고용노동부에 해당 강사를 고발하고 그 학원에서 일하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나왔다. 내 행동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지만 내가 무슨 파괴왕도 아니고 지나온 자리가 다 폐허가 되어버리니 그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게 다 내 주관 때문인 것 같고, 비거니즘 한다고 힘들게 사는 것도 그렇고 이런 성격으로 취업한다면(대한민국에 취업하고 싶은 기업도 딱히 없다. 어른이 되고나니 직장인 분들이 제일 존경스럽다.) 고생길이 훤해보였다. 그래서 내 주관의 쓸모를 모색하고자 블로그 이름을 주관의 쓸모라고 짓게 된 것이다. 이거 은근 슬픈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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