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 덕후의 sam 이북리더기 중고 구입기(+sam 구독형 서비스 이용후기)
(교보 덕후라 쓰고 호구라고 읽는다)
스마트폰에 낭비하는 시간이 늘어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중 이북리더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먼지 쌓인 '아이리버 스토리 K'를 꺼냈다. 뽑기운도 좋았던 데다 케이스에 끼워 깨끗하게 잘 썼기에 오랜만에 책을 읽기에 좋았다. 이 좋은 걸 그동안 왜 안 썼지 싶어 이북 목록 업데이트를 하려는데 어째 원활하지가 않길래 인터넷을 뒤져보니 진작에 단종된 데다 서비스가 아예 중단되었다고 한다. 정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대기업 제품을 사는 이유는 지속적인 A/S를 기대하기 때문이 큰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중단시키다니. 스토리 K를 계속 쓰고 싶었지만 이북리더기를 새로 구입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구글 북스 등으로 PDF 파일을 받아 읽는 방법도 있었지만 원하는 책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ePUB에 비해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귀찮은 와중에 어떤 제품이 괜찮은지 오랜 시간을 들여 검색해야만 했다. 신제품은 대부분 20만 원 내외였는데 크고 무겁거나,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거나, 서비스 범위가 폐쇄적이거나 이 중 몇 가지가 겹쳤다.
결국 '크레마 사운드'정도로 타협을 보았는데 이 역시 단종된 제품이라 A/S도 쉽지 않고 yes24앱 외에는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다는 후기가 종종 보여서 망설여졌다. 스마트폰 대국에 어째서 '킨들'만 한 이북리더기는 없는 것인가 의문스러웠다. 아마도 한국에서 책 읽는 사람이 원체 소수인데 그중에서도 책벌레라 불릴만한 사람들이 대부분 종이책을 선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래도 나는 웬만한 불편함에는 적응하는 편이어서 일단 형편 되는대로 한 두대 사서 써보고 나에게 맞는 기계를 찾아보기로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교보문고 이용이 원활한 제품이었으면 했다. 어려서부터 이용해온 서점이었기에 익숙하고 각별했기 때문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전자책은 리디북스고 그런 점에서 '리디북스 페이퍼'도 끌렸지만 교보문고 책을 볼 수 없기에 구입 후보 대상에서 제외시켰다(학부시절에 내가 구하는 책이 어디에도 없을 때 오직 교보문고에서만 찾을 수 있었던 경험을 수두룩하게 했었다).
이러니 결국 교보문고에서 내놓은 이북리더기를 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교보 sam'을 검색하니 이북 월정액 서비스에 대한 정보만 잔뜩 나오고 이북리더기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제품에 대한 좋은 평가는 별로 없었지만 장점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1.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았다. 2. 작고 가볍다. 3. 중고가가 저렴해서 입문용으로는 제격이다. 4. 이북리더기 치고는 설탕 액정이 아니다(튼튼하다) 5. 자사(교보) 서비스 이용에 최적화되어있다. 6. A/S를 해주는 곳이 있다. 이거야 말로 내가 찾던 제품이 아닌가!! 네이버 블로그에 검색해보니 최근에 이 제품을 중고로 구입해서 만족스럽게 사용한다는 글이 있었고 나는 그 글에 3만 원을 걸었다. 이로써 내가 가진 최대치의 호구력을 발휘해 스토리 K에 이어 또다시 아이리버에서 만든, 단종된, 교보문고 이북리더기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교보 sam은 호평은 적은데 중고거래가 굉장히 잘 된다는 특징이 있었다). 여기에 중고나라까지 나를 도와 졸업한 학교 근처에서 3만 원에 직거래가 가능하도록 연결해주었다. 이 정도면 가히 운명적?
중고나라에서 물건을 팔아본 적은 있어도 구입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헤아려보니 전부 전자제품만 거래했다). 사건 팔건 간에 직거래만큼 확실한 게 없는 것 같다. 이번 거래는 재밌었던 게 거래 한 번으로 거래자의 온 가족의 스토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이 쓰던 물건을 팔기 위해 아버지가 중고나라에 글을 올렸고, 회사 일로 바빠서 아내 분이 대신 나와주기로 했던 것이다. 이런 거래에서 못 쓸 물건을 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다. 잔기스는 있지만 사용에는 지장이 없는, 나만큼이나 불완전한, 자신만의 역사를 가진 이북리더기가 새 주인을 찾아온 것이다. 받아보자마자 급한 마음에 핫스팟까지 켜서 이북 목록을 업데이트시켰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은 곧바로 해소됐다. 최근에 산 책들이 느리긴 해도 업데이트가 되었고 새 책도 구입해서 넣을 수 있었다(만세!). 단점은 형광펜을 칠 때 리디북스(스마트폰 앱)만큼 섬세한 인식이 어렵다는 거, 텍스트가 도장으로 찍어낸 듯 균일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마치 복사된 스캔본 같다), 가끔 손을 안 대도 페이지가 넘어가는 때가 있다는 거, 배터리가 생각보단 빨리 닳는다는 거 정도다. 이 정도는 뭐 관대한 마음으로 커버 가능하다. 도서관 책을 빌려도 이정도 번거로움과 거슬림은 있다. 글씨가 너무 작거나 흐릴까 봐 걱정했는데 폰트만 조정하면 충분히 선명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근데 학교 전자도서관 로그인이 죽어라 안돼서 홧김에 교보 sam 이용권을 두 개나 결제해버렸다(호구력 재차 상승). 이용권은 두 종류인데 'sam베이직'이 있고 'sam무제한'이 있다('sam스페셜'이란 것도 있는데 특정 출판사나 장르 도서에 한정되어있다). sam베이직은 한 달에 두 권 무료고 sam무제한은 권 수에 제한이 없다. 그래서 sam무제한 하나면 어떤 책이든 마음껏 빌려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sam무제한과 sam베이직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둘 중 하나만 가능하고 아주 제각각 난리 부르스였다. '유튜브 프리미엄'처럼 한번 딱 결제하면 어떤 콘텐츠든 마음껏 볼 수 있는 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북 서비스가 되는 책이 있고 안 되는 책이 있지 않은가(현시점 기준 sam베이직 128,805종, sam무제한 45,779종 도서 이용 가능). 10년 넘게 인터넷 쇼핑을 이용해온 나도 복잡하고 짜증이 날 정돈데 그렇지 않은 고객들은 얼마나 더할까 싶었다. 어쨌든 당분간은 특가에 이용 가능하니 인내해보려고 한다. 나는 책을 제값 주고 사는 것이 결코 아깝지가 않다. 단지 직관적인 서비스로 시간을 아끼고 싶을 뿐.
버스나 지하철 이동시간에 부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그동안 책 무게나 심오한 책 제목, 그리고 서서 읽기에 부담스러운 크기와 무게 때문에 스마트폰만 줄곧 들여다보며 버리던 시간을 독서로 채우게 되어 기쁘다. 이걸로 책을 읽고 있으니 주위에서 은근한 동경과 호기심의 눈길(?)이 느껴져서 살짝 집중력이 흩어질 뻔도 했지만 재밌는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행복했다. 3만 원으로 구입한 중고 sam으로 몇 권의 책이나 읽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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