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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호캉스] 글 쓰려고 묵은 호텔, 스카이파크 킹스타운 동대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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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을 보면서 와닿는 점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 한번 호텔에 글쓰러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 들어 이유 없이 졸리고 늘어지던 차에 무슨 계기였는지 불현듯 호텔이 떠올라서 바로 구글에 검색해서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저질러버렸다.


서울 동대문의 스카이파크 킹스타운이라는 4성급 호텔에서 2박 3일 일정이었다. 이 호텔은 교통이 편리하고 나에게 너무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동대문에 위치하고 있었고, 남산타워를 포함한 시티뷰를 즐길 수 있었다. 거기다 사진상으로 앉아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책상까지 있어보여서 바로 여기다 싶었다.


그런데 예약일이 다가올 무렵 수도권 거리두기는 4단계로 격상되었고 괜히 귀찮은 일을 벌인 것 같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럴줄 알고 과거의 나는 취소 불가한 예약을 잡은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보자 하고 배낭에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나는 비 오는 날은 아무 이유없이 기분이 좋은 사람이다. 호텔에 거의 도착할 무렵부터 지하철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날 마침 서울에 크고 예쁜 무지개가 떠서 한때 SNS에 온통 무지개 사진으로 도배가 되기도 했다. 하필 오늘, 서울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시티아울렛과 한 건물을 공유하고 있다
보랏빛 밤이 내리는 동대문
지하에 푸드코트가 있어서 밥 사먹기 너무 좋다





나는 호텔에 가면 디테일부터 눈에 들어온다. 샹들리에의 호화로움이나 엘리베이터 문의 재질, 곳곳의 마감처리 같은 부분들이 이 호텔이 작지만 만만찮은 호텔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 했다.




예약 당시 메모에 고층 선호라고 적어두어서인지 시티뷰가 좋은 방으로 배정되었다. 창밖으로 낙산 성곽이 내려다보였다.



작지만 포근한 느낌이 드는 방이었다. 청소와 정리정돈도 구석구석 흠잡을 데 없이 잘 되어있었다.



최근 뉴스에서 여자 혼자 모텔에 묵는데 모텔 직원이 문 따고 들어와서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이제 혼자 여행도 마음껏 못 다니는 거 아닌가하고 겁먹었었는데 최소한 좋은 호텔에 묵으면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문 안쪽에 추가로 잠금장치가 있어서 이게 뭐라고 그렇게 안심이 되었더랬다.


미리 준비해둔 더 바디샵 입욕제들.



밖에 나가니 여전히 비가 예쁘게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두타 스타벅스에서 얼음을 뺀 라테 3잔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집에서 딱 한 권의 책을 신중하게 골라 챙겨 왔는데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소설이었다.

이동진 평론가님처럼 욕조 안에서 책 읽기를 시도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입욕제를 풀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빵빵하게 틀었다(호텔은 아파트와 달리 층간소음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한다).

거품목욕을 하면서 그저 물 속에 앉아있기만 해도 황홀했다. 책도 생각했던 것보다 잘 읽혔다. 괜히 무겁게 가져갔다가 안 읽을까봐 일부러 잘 읽히는 책으로 골라오긴 했다.

욕조 안에서 발이 퉁퉁 불도록 있었다. 호텔에 머무른 시간의 절반 정도는 욕조 안에서 보낸 것 같다. 다음번에는 꼭 욕조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가리라 마음먹었다. 욕조가 있는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집에서 하는 거품 목욕으로도 이런 기분을 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몽롱한 기분을 더해주었던 죠리퐁맛 막걸리..ㅎㅎ



욕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너무 좋아한 탓에 이 호텔에 온 목적을 잊고 말았다. 글을 한 자도 쓰지 못한 것이다. 글을 쓰지 못한 죄가 책 읽기로 만회가 될 리 없지만 책이라도 읽었으니 됐다. 나는 이 호텔에서 더없이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넓은 침대에서 너무나 달콤한 잠을 잤다. 평소 바닥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호텔 잠자리가 늘 편안하지만은 않았기에 여긴 도대체 무슨 침대를 쓰는지가 너무 궁금해졌다. 프런트에 여쭤보니 에이스 침대를 쓴다고. 언젠가 내 집이 생기면 꼭 에이스 침대를 놔야지.

결국 목표한 글은 한 줄도 못 썼지만 꿈꾸는 듯한 2박 3일을 보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온전히 나 자신이 되어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기에.

난생처음 혼자 온 호캉스였지만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스카이파크 킹스타운은 나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은 호텔이다.

다음번에도 이 호텔에서 글쓰기를 도전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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