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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서 산다는 것(반지하 거주 15년 경험담, 반지하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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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한 살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햇수로 9년 간 인천의 방 세 칸짜리 낡은 빌라 반지하에서 자랐다. 그리고  서울의 방 두 칸짜리 자취방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6년을 또다시 반지하에서 살았다. 이렇게 내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세월을 반지하에서 보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지난 지금은 행복주택으로 이사해 2년째 깨끗한 새 아파트의 지상층에 살고 있다. 반지하에서 지상층으로 올라오고 나서야 반지하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처음 살았던 반지하 빌라는 계단을 일곱 칸 정도 내려가야 하는 집이었다. 방 두 개, 그리고 화장실 창문을 통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다. 빌라 골목에서 동네 아이들이 공을 차면 뿌연 흙먼지가 방충망을 덮쳤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면 지나다니면서 집안을 흘깃 들여다보는 눈들이 있었다. 화장실 창문에는 환풍기가 달려있지 않아서 그야말로 골목으로 뻥 뚫린 구멍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곳을 스티로폼 박스 뚜껑 같은 것으로 대충 막아두었었는데 여동생이 샤워하던 중에 그 좁은 창문으로 웬 남자의 손이 불쑥 튀어나온 적도 있었다. 항상 슬리퍼를 치익 치익 소리를 내며 끌고 지나다니던 동네 아저씨의 소행이었다. 동생은 그 뒤로 창문 트라우마가 생겼다. 나 역시 밤에 창문 여닫는 일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슬픈 추억은 따로 있다. 우리 집에는 아빠, 엄마, 삼 남매 이렇게 다섯 가족이 살았는데 아빠는 엄마한테 화가 날 때 우리 삼 남매를 무릎 나온 내복 차림으로 현관문 밖으로 내쫓고 엄마를 괴롭혔는데, 우리 삼 남매는 밖으로 돌아나가 큰방 쪽 창가에서 엄마가 아빠에게 빌며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창가에 쪼그려 앉아 펑펑 울었다. 밖에서 귀를 조금만 기울이면 집 안에서 나는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동생들은 엄마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기엔 너무 어렸기에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반지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집 같지는 않았을 거다. 내 경우에는 첫 번째 반지하 집에서 사는 동안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든 그때만큼 힘들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세월을 통과했기에 지금 이 무탈한 날들의 소중함도 알고 남들이 보기에 소소한 일상에도 만족하며 살고 있다. 개인사와 반지하라는 공간이 복잡하게 얽혀 반지하만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하기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것 같다.

 

 

다만 이런 건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다. 반지하는 대부분 환기가 잘 되지 않으며, 벽에는 늘 시커먼 곰팡이가 넓게 피어있고(벽지를 덧발라도 그때뿐이다), 여름이면 바퀴벌레, 돈벌레, 집게벌레, 곱등이 등 각종 벌레가 들끓는다. 우리 집의 경우에는 방 안에 쥐까지 뛰어다녔다(처음부터 있었던 건 물론 아니고 몇 년 살다보니 쥐가 들어와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엄마가 파리채의 두툼한 손잡이 부분으로 달리는 쥐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켜 잡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밤이면 구멍 난 천장(모양이 다른 형광등으로 교체하면서 생겨났다) 위에서 쥐들이 광란의 질주를 했다! 혹여 불을 끈 사이에 그 구멍으로 쥐가 떨어질까 봐 이불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봉쇄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다 제풀에 지쳐 잠들곤 했다.

 

 

대학생 시절에 살았던 두 번째 반지하 집은 첫 번째 집만큼 던전은 아니었다. 계단도 안 내려가는, 밖에서 보면 1층 같은 반지하였다(당시 대학생전세임대주택으로 구할 수 있는 집으로 그만한 집이 없었다). 그러나 (독일바퀴와는 달리 움직임이 느려서 잡기 쉽지만 덩치는 엄지손가락 마디만 해서 볼 때마다 심장 떨어지는 비주얼의) 먹바퀴가 여름만 되면 출몰했고 현관문 밖에서는 곱등이가 자주 튀어나왔다. 집 안 벽에 곰팡이는 당연히 있었고 환기가 잘 안 되지만 여자 둘이 사는 집이라 창문도 마음껏 열지 못했다(실제로 내 동생은 무심코 창문이 열린 방에서 맨 몸으로 머리를 말리다가 건너편 건물에서 담배를 피우며 물끄러미 자신을 보고있던 남자와 눈을 마주친 적이 있다).

 

 

화장실에는 늘 감전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아무리 습기가 차도 샤워를 마친 뒤 옷까지 입고 나서 창문을 열었다. 그 집에는 환풍기는 물론 세면대도 없었고 세탁기만 돌리면 하수구가 막혀 물이 바닥에 첨벙첨벙했다. 외출 준비하다가 화장실에 들락거리면 양말이 젖어 나오는 게 은근 스트레스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러고 살았나 싶다. 공간이 주는 한계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허다했다. 환경을 극복한다는 건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실로 어머어마한 인내와 고통이 따른다.

 

 

그럼 반지하에서 살아서 좋았던 점은 없는가. 당연히 있다. 비 오는 날 창문을 열어두면 촉촉한 빗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빗소리를 듣기 위해 창문을 열어두면 방 안으로 빗물이 튀겼지만 그건 아무 상관없었다. 나에게는 창가에서 빗소리를 듣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아파트에 사는 지금은 이 빗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아쉽다. 지금은 유튜브에서 빗소리를 틀어놓는 걸로 대체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빗소리가 들리는 전원주택에 사는 것이 꿈이다. 두 번째 반지하 집에서는 고양이와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이 녀석이 종종 길고양이와 소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런 재미도 사라져서 아쉬운 것들 중 하나이다.

 

 

△대학생 시절에 살던 집. 내 방 창문을 열면 저렇게 벽과 쇠창살이 보였다. 그래도 사람이 지나다니는 것보다 꽉 막힌 편이 나았다.

 

△아깽이 시절부터 반지하에만 살던 고양이는 아파트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세상이 얼마나 신기하고 낯설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지인이 반지하방을 구하고 있다면 일단 한 번은 만류해볼 것 같다. 반지하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금전적인 이유 때문일 텐데, 내 경우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갑갑하고 힘들어서 밖으로 나돌면서 돈을 많이 지출했다. 밖에서 공간을 빌리려면 필연적으로 돈이 들지 않나(카페를 가더라도 커피 한 잔 값의 돈이 든다). 집에 있으면 습하고 공기도 탁해서 무슨 일을 하든 효율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대신 한여름에는 습하기는 해도 아주 뜨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창문을 자유롭게 열지 못하면 환기가 잘 안 되고, 옷에도 음식 냄새가 배거나 변색될 수 있다(내 집냄새의 문제는 나만 못 느낀다는 것이다). 삶의 질 하락 악순환의 고리이다.

 

 

이러한 고충을 견디기 위해선 어느 정도 정신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력이 있다가도 닳아 없어질 수 있는 곳이 반지하이기 때문이다. 사는 집 주소를 써내야 할 때 B0-으로 시작하는 호수를 적으면서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런 시간들을 견뎌 냈을 때 그만큼 성숙해질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이미 집을 구했거나 사정 상 반지하에서 지내야 되는 케이스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다시 반지하에서 살아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 강해지기 위해 힘든 시간을 우직하게 견뎌야 한다는 식의 조언은 필요치 않다. 다만 확실한 건, 그곳에서 쌓은 경험들이 내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반지하에서 보낸 시간 역시 소중한 내 삶의 일부분이다.

 

 

만약에 햇빛도 잘 들고 맞바람도 잘 들어서 환기가 잘 되는 집이라면 곰팡이도 없을 것이고 벌레도 덜 꼬일 것이다. 이런 집이라면 아무리 반지하라고 해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할 것 같다. 아이나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의 경우 반지하는 층간소음 유발 우려에서 상당 부분 자유롭다는 점도 무시 못할 장점이다(우리 부모님이 삼남매를 데리고 반지하로 이사가게 된 이유였다). 층간소음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한 노력에도 금전과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지금 아파트에 살아보니 그렇다). 요즘 반지하는 옛날 반지하 같지 않을 수 있다. 분명 반지하도 반지하 나름일 것이다. 그래도 집을 잘 보는 사람을 대동하여 이사 갈 집에 해가 떴을 때와 졌을 때, 최소 두 번은 방문해서 잘 살펴보고 신중하게 계약할 필요가 있다.

 

 

 

※이미 반지하에 살게 되었다면 알아둘 점.

 

1. 사생활 차단에 늘 신경 쓸 것. 커튼이나 블라인드 필수(블라인드가 더 유용할 수 있다) -누군가 창밖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 수 있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2. 환기에 신경 쓸 것. 습기는 곰팡이를 유발하고 알게 모르게 당신의 건강을 좀먹는다. 제습기는 필수가전이다.

 

3. 반지하에는 벌레가 생기기 쉬우므로 음식물 쓰레기는 수시로 버리고(음식물 쓰레기는 밀폐 기능이 있는 통에 보관한다), 벌레가 유입되는 구멍이나 틈새는 없는지 잘 살펴본다. 여름, 특히 장마철이 오기 전에 꼭 점검하고 메꾸미 등으로 메울 것. 

 

4. ☆추천 아이템☆: 전기 파리채, 붕산(설탕이나 달달한 과일 조각 같은 것과 섞어서 바퀴가 잘 다닐만한 길목에 놓으면 얼마 뒤 귀신같이 박멸된다), 비오킬(약국에서 파는 저독성 살충제로 사람과 온혈동물에 안전하다. 4주 후 이산화탄소로 분해되어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페브리즈, 섬유유연제(환경호르몬 우려가 있긴 하지만 빨래 마르는 게 시원찮아 종종 필요할 때가 있다), 위닉스 뽀송(반지하 생활 막바지 무렵 들여놓았다. 습한 환경에서 막 돌리는데도 잔고장 없이 잘 버텨줘서 고마운 제품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 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집을 구해서 밝고 씩씩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며 아무쪼록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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