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비건』, 한국형 비건을 위한 따끈따끈한 추천도서, 김한민
"나는 어느 날 무언가를 보았고, 알게 되었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변화를 시도했다. 시도의 결과는 좋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았고, 그러다 보니 이제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이게 다다"
나는 비건이다. 1년 365일, 하루 세끼 완전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비건이 되기 전,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스스로를 '비건 지향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규정했었다. 그러고는 종종 생선을 먹기도 하고 (덩어리는 아니었지만) 고기가 포함된 소스나 국물을 먹는 등 한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다. 비건 지향 채식 2년 차에 접어들며 동물권에 대한 이해가 점점 높아지고 영양학에 대한 공부가 뒷받침되면서 동물성 식품을 완전히 끊게 되었다. 현재는 로 비건(Raw vegan)을 지향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건강과 행복도는 증진되고 있다.
이 책은 내가 채식을 시작한 지 1년쯤 됐을 무렵 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발견했다. 아주 작은 동네 서점이었는데 방문한 김에 책을 한 권 팔아주고 싶어서 적당한 책을 찾다가 이 책을 골랐다. 모처럼 우리나라 작가가 쓴 비건 관련 서적이 나온 것이 반갑기도 했고, 아직까지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한국형' 비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었다. 굳이 한국형 비건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국내에 나와있는 비건 관련 정보들이 외국에서 번역되어 들어온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정에 맞는 비건(채식)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다. 이 책은 가볍고 부담 없으면서 이러한 갈증을 해소해주기에 충분했다. 구입 후 이 책을 세 번 정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건으로 산 날들이 하루하루 쌓인 만큼 문장이 마음에 와 닿는 정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 책은 비건에게도, 아직 비건이 아닌 사람에게도 추천하기 좋은 책이다.
한국에 비건 인구는 약 50만 명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비율이 높지 않고 아직까지도 다소 생소한 개념에 속한다. 한국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것은 '질문 받이'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여러 사람으로부터 엇비슷한 질문을 반복해서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때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처음이거나 유일한 비건일 수 있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내가 아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대답하면서도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좀 더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답변은 없는지 고심하게 된다. 그럴 때 이 책에 나온 내용을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 비건이 아니더라도 비건에 대해 호기심이 있거나 한 번쯤 왜 채식을 해야 하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 밑줄 친 구절들
단시간 내에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동물 한 마리를 죽이는 시간은 짧을 수록, 비용은 적을수록 좋기 마련이다. 전기 충격이나 순간적인 고열로 죽이는 경우도 잔인하긴 매한가지이다. 살상 공정 이후에도 의식이 남아있는 동물이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려 목에 피를 철철 흘리는 일도 허다하다. 생각해보면 인도적인 도살이란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p.27
축산업은 분뇨 처리 비용을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으니, 업계가 이윤을 추구하면서 생기는 똥을 우리 세금으로 치우는 셈이다.
-p.28
우리는 산림 파괴에 둔감해지고 있다. 1~2초마다 축구장 넓이의 산림이, 해마다 이탈리아만 한 크기의 산림이 없어지고 있는데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p. 29
2015년에 국제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소시지, 햄 같은 가공육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전염병으로 살처분한 동물은 무려 7천만마리, 소모된 비용은 2조 1917원(연평균 약 3천억원)이었다. 어쩌다 일어나는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의 일부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지옥이 일상이 되었다. 이것을 자동차 산업에 빗대어 보면, '리콜' 비율이 이렇게 높은 엉터리 산업이 지탱할 수 있는 이유는 정부 보조금 때문이다.
-p.31
내가 비건이란 말을 택한 이유는, 그것이 내 지향점과 가장 가까운 점도 있지만 지금 한국에선 '불완전한' 비건조차 너무 적어서이기도 하다. (...) 이 땅은 비건 황무지다. (...) 어서 한국에도 비건들이 많아져서 나 정도는 명함도 못 내미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p.51
고통을 지각하는 생물을 죽이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산다는 것 자체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살상에 기여하는 일이다. 비건들이 의존하는 농업도 간접적으로 동물들을 죽인다. 완벽한 비건은 없다는 생각으로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완벽한 비건을 몇 명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들을 더 '비건적'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훨씬 효과적이라고.
-p.52~54
식물을 가장 적게 죽이고, 식물의 고통을 가장 최소화하는 방법이 바로 비건식이다. 주지하다시피 동물성 식품, 특히 육류는 엄청난 양의 식물 사료를 먹는 동물을 먹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최대의 식물 희생을 치른다.
-p.148
채식인은 체내에 평균적으로 두세 끼 정도가 머물러 있다면, 비채식인은 일고여덟 끼 정도가 머물러있다고 한다. 사자나 표범같은 고양잇과 동물들이 하루 종일 게으르게 늘어져 있는 것도 이 힘겹고 느린 소화 과정 때문이다.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고릴라, 오랑우탄 등의 영장류들은 모두 채소와 과일만 먹는 비건들이다.
-p.111
참고로 나는 작년 1월 경, 넷플릭스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 다큐를 보고 단숨에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책에는 "동물/환경에 무관심하지만 자기 건강은 중요한 사람에게 비건을 권할 때" 적당한 다큐멘터리로 소개되어있다(나는 동물과 환경에도 관심이 많으면서 건강도 잃어본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 밖에도 이 책에서는 비건 관련 정보를 유형별로 소개하고 있다.
너무 무겁지 않게 슬쩍 비건을 권하고 싶을 때
*<Cowspiracy(소 음모)>(2014, 다큐):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풀어간다. 깔끔하고 이해하기 쉬운 그래픽이 일품이고, 끔찍한 장면이 없어서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 처음 권하기 좋다.
*<Let Us Be Heroes(우리가 영웅이 되도록)>(2018, 다큐): 비건 운동선수들과 창업자들의 설득력 있는 메시지들을 소개하는 최신작.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Earthlings(지구 생명체)>(2005, 다큐): 끝까지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처절하지만 인생에 한 번은 봐야 할 장면들이다. 동물권 커뮤니티에서 바이블과도 같은 작품으로, 오랜 비건인 호아킨 피닉스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Dominion(지배)>(2018, 다큐): <Earthlings>의 최신 버전이라고 불리는데 최근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호아킨 피닉스를 비롯한 여러 배우들이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동물/환경에 무관심하지만 자기 건강은 중요한 사람에게 비건을 권할 때
*<What the health(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2017, 다큐): <Cowspiracy> 팀의 최신작으로 비건의 건강적 측면을 조명한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좀 더 오래된 버전으로 <Forks over knives(포크스 오버 나이브스)>(2011, 다큐)도 추천한다.
전문적인 건강 정보가 필요할 때
*베지닥터(vegedoctor.org, 웹사이트): 한국의 채식 의사들이 모여 우리 실정에 맞는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영양학팩트(NutrionFacts.org, 웹사이트): 필독을 권하고 싶은 아마존 베스트셀러 『의사들의 120세 건강 비결은 따로 있다』(2017)의 저자 마이클 그레거 박사가 일반인은 챙겨볼 수 없는 최신 연구 성과들을 종합해 우리의 궁금증과 걱정을 해소해준다.
일상에 유용한 비건 정보가 필요할 때
*채식한끼(앱): 국내에서
*HappyCow(앱): 해외에서
*『비건(Begun)』(begun.co.kr, 잡지)
나 혼자 하기 힘들고 커뮤니티가 생각날 때
*채식공감(cafe.naver.com/veggieclub, 커뮤니티): 정기 모임을 통해 다른 비건들을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비건페스티벌(facebook.com/vegankorea, 축제): 한국에서 비건이라는 말과 생각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삼인방이 매년 개최하는 축제.
*동물해방물결(donghaemul.com, 단체):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종차별 철폐와 비거니즘을 전면에 표방하는 소신 있는 동물권 단체.
"내가 이걸 왜 시작했지?" 초심이 희미해질 때
*<Land of Hope and Glory(희망과 영광의 땅)>(2017, 다큐), 비건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연출한 <Eating Animals(동물을 먹는다는 것)>(2017, 다큐) 등 최근에도 관련 다큐들이 쏟아지고 있다. 가끔은 긴 다큐보다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이 더 도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PBN(Plant Based News)에서 제작한 <ALL LIFE is Connected(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이 책의 주제인 연결감을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언어를 몰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아직 '고기=단백질=힘'이라는 신화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
*<The Game Changer(게임 체인저)>(다큐): 2018년 말 개봉 예정.
*위대한 비건 운동선수들(greatveganathletes.com, 웹사이트): 전 세계 비건 운동 선수들의 활약상을 소개하고, 매해 최고의 비건 스포츠 스타를 선정한다.
통렬한 비판이 필요할 때
*비건 활동가 게리 유로프스키(Gary Yourofsky)의 강연 <Best Speech You Will Ever Hear(당신이 들을 최고의 스피치)>(2010, 영상): 어쩌면 단일 강의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을 비건의 세계로 이끌었을 명강연. 유튜브에서 4백만 회 이상 조회된 그의 조지아 공대 강연은 축산업에서 착취당하는 동물의 실태, 잔인한 도살 과정, 육식의 폐해에 대해 거침없이 폭로한다.
신뢰가 가는 지식인의 한마디가 필요할 때
*조지 몽비오(George Monbiot). 영국 『가디언』지 최고의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이자 명철한 환경주의자인 그는 비건의 장단점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후 스스로 실천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남긴 기고글들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는 최근 노동당 의원 케리 매카시(Kerry McCarthy)와 함께 환경주의자들에게 정말로 지구를 생각한다면 비건이 되라고 공개 편지를 쓰기까지 했다. monbiot.com
*헨리 스피라(Henry Spira).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내가 가장 모범적인 동물권 운동가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에겐 "내가 이런 일을 했다"라는 자의식보다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느냐가 정말로 중요했다. 국내에는 피터 싱어가 헨리 스피라에 대해 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2013)가 번역되어 있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최신 비건 뉴스를 받아보고 싶을 때
*PBN(plantbasednews.org, 매체/채널): 비건 관련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영국 채널. 영국에서 비거니즘의 폭발적인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영향력 있는 비건인 사우디의 칼레드 왕자가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매체이다.
동물권에 대해 체계적으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을 때 좋은 책
*『동물해방』(2012),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2012), 피터 싱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2011), 조너선 사프란 포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2011), 멜라니 조이
*『고기로 태어나서』(2018), 한승태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2011), 존 로빈스
참고도서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2011), 존 맥두걸
*『우리 몸은 채식을 원한다』(2006), 이광조
*『바른 식생활이 나를 바꾼다』(2002), 『밥상을 다시 차리자』(2014),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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