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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 후기] 아직 20대인 두 자매의 행복주택 입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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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봄, 의정부로 이사 오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과 맞물려 자취방 계약이 끝났다. 나와 동생이 함께 지내던 그 자취방은 다세대주택의 반지하 투룸이었지만 내려가는 계단이 없어서 1층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곳에서 다년 간의 서울살이를 마무리하고 의정부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왜 하필 의정부였냐 하면 LH 행복주택에 당첨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정도면 자의 반 타의 반이라 해도 되려나. 

 

 

이사 가기 두려웠던 이유

 

 

이미 서울살이에 충분히 적응하다 못해 아주 녹아든 상태였다. 편리하고 넉넉한 차편의 대중교통, 가까운 위치에 있는 각종 편의시설, 북적북적하지만 그만큼 활기가 넘치는 대학가 풍경들... 이런 익숙한 혜택을 뒤로하고 중심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속이 쓰렸다. 우습지만 서울시민이라는 것, 서울리스타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다. 특히 내가 살던 인천 친구들 앞에서 내가 서울에 산다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나는 서울로 '진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 중 일부는 여건이 되면 서울에서 살고 싶어 했다.

 

 

경기 북부로 이사 가면 약속 장소를 어디로 잡아야 할지도 고민거리였다. 인천 친구들과는 서울 동부와 인천의 중간쯤인 홍대, 노량진 부근을 약속 장소로 잡곤 했다. 서울 1호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인천-의정부'가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지 잘 알 것이다(그야말로 1호선 투어다). 한 친구는 내가 의정부로 이사 간다고 하니 거기 북한 아니냐고, 인천보다 38선과 더 가까운 게 실화냐고 물었다. 그렇다. 명백한 실화였다. 이제 고향 친구들도 전보다 만나기 힘들어질 것이었다.

 

 

입주 전, 새 집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와 동생은 1호선에서 노란 버스로 갈아탄 뒤 산 넘고 물 건너 굽이굽이 새 집을 향해 달렸다. 높고 뾰족뾰족한 산이 인상적인 도봉구를 지나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라곤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무수히 지어진 아파트뿐이었다. 정말이지 아파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아, 나는 도저히 이 도시를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아파트 성애자'가 아닌 이상 이 도시 어느 구석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정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낡고 빛바랜 것들을 사랑하고 시간이 빚어낸 고즈넉함 속에서 편안함을 찾곤 했던 나는 마치 고아가 된 심정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아스팔트 위로 겨울이면 칼바람이 쌩쌩 불어댈 거고, 여름이면 뜨거운 열기가 후끈후끈 뿜어져 나올 텐데 대로변에 갓 심은듯한 가로수들은 너무 어리고 여려 시원한 그늘이 되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나마 새 집은 아담하고 깨끗했다. 신축 아파트답게 여러 편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내가 살았던 모든 집을 통틀어 가장 좋은 집이었다. 나는 일생의 절반을 반지하에서 살았는데, 아파트에 사는 것도 처음이고 세면대가 달린 집에서 살아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행복주택 계약을 위해 홀로 여기저기 서류 떼러 다니고 발품을 팔며 자존심이 다쳐 눈물을 쏟았던 시간들을 모두 보상받고도 남을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새 집이 너무 사랑스럽고 감사했다. 그럼에도 이 한 칸짜리 방을 둘러싼 풍경이 우리에게 줄 험난한 여정이 두려웠다. 무엇보다 당장 서울로 왕복 4시간 출퇴근해야 하는 동생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차멀미가 심한 동생의 출퇴근 시간은 길 위에 속절없이 버려질 것이었다. 줄어든 월세만큼 늘어날 교통비는 또 어쩔 텐가. 아무래도 우리는 이 집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기나긴 고민과 망설임 끝에 결국 행복주택으로 이사 오기로 했다. 부동산 앱을 날마다 뒤지고 부동산마다 붙은 공고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지만 서울에서 좋은 주거조건에 저렴한 월세집 구하기란 까마득해 보였다. 아무리 비교해보고 계산기를 두드려보아도 행복주택으로 오는 편이 백번 나았다. 일단 한번 살아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때 다시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 마음을 독하게 먹었더랬다.

 

 

이사 안 왔으면 아쉬워서 어쩔 뻔?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의정부경전철을 탄 풍경

 

 

상상 속의 고통은 실제의 고통보다 더 크다고 하던가. 난 그 말이 참이라는 걸 의정부로 이사한 그날부터 조금씩 깨달아갔다. 멀게만 느껴질 것 같았던 서울도 귀여운 송충이 같은 경전철을 타고 슝슝 잘만 다닌다. 이 정도면 다닐 만 한데 왜 그리 끔찍하게만 느껴졌었는지.

 

 

 

 

이사 온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우리는 동남쪽으로 트인 창에서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뜬다. 이사 후 한동안 베란다에서 빨래가 바싹 마르는 풍경을 찍어 사진으로 남기곤 했다. 누군가에게는 일평생 당연했을지 모르는 일상이지만 우리 자매에게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삶의 질 향상이었다. 작지만 깨끗하고 포근한 우리 집과 사랑에 빠졌다. 여름을 맞이하며 불현듯 떠오르는 추억 속 시커먼 곰팡이와 먹바퀴에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작별 인사를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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