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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후기] 스물 아홉 먹고 롯데월드에서 놀다온 소감(+현타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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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사촌언니, 오빠, 동생들과 여섯이서 롯데월드에 다녀왔다. 이게 대체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안 날만큼 오랜만이었다. 모처럼 가는데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놀기 좋은 날씨였다. 아침 10시쯤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롯데월드가 이렇-게 작았나?' 하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크고 넓게만 느껴지던 곳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보니 그렇게 작고 좁아 보일 수가 없었다. 내 마지막 롯데월드와 오늘의 롯데월드 사이에 견문이 부정할 수 없이 넓어진 탓이었다. 어렸을 때 본 웅장하고 화려했던 장식들이 세월이 흘러 닳고 바래진 모습을 보니 묘하게 씁쓸한 기분도 있었다. 

 

 

오늘의 첫 스타트는 신밧드의 모험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억이 많고 기대감이 컸던 놀이기구였다. 배를 타고 동굴로 진입할 때쯤 마주하게 되는 특유의 습하고 퀴퀴한 공기. 크흐... 이게 바로 신밧드의 모험이지!! 감격스러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몰입을 잘하는 편이었는데, 동굴 안에 놓인 휘황찬란한 보석과 금화들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솔직히 말하면 내려서 쓸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라비안나이트 설화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능했다. 신밧드의 모험을 타면서 학부 때 읽었던 '천일야화'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세계 곳곳을 누벼야 해!'라는 뜻밖의 결심도.(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이 가장 뿌듯해할 유형)

 

신밧드의 모험을 시작으로 혜성특급, 자이로드롭, 모노레일, 파라오의 분노, 아틀란티스 등 놀이기구의 난이도에 따라 탈 수 있는 사람, 못 탈사람끼리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했다. 나는 가리지 않고 다 탈 수 있는 쪽이었지만, 진작에 타 본 놀이기구를 다시 타는 일도 만만찮은 도전으로 느껴졌다. 평상시에 1분에 6-70번 뛰던 내 심장박동은 자이로드롭이 상승하는 동안 150까지 치솟았다. 자이로드롭의 하이라이트는 하강하는 단 몇 초에 있지만, 상승할 때와 정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더 공포스럽다. 하강할 때는 공포를 느낄 겨를조차 없기 때문이다. 내려갈 때는 그 흔한 '악'소리조차 안 나온다. 타고나니 온 몸이 후들거렸다. 세 번씩 타자고 자신만만하던 언니오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렇게 자이로드롭을 한 번 타고나면 이제 웬만한 놀이기구는 다 개껌으로 보인다는 거.

 

처음 타본 아틀란티스의 엄청난 속도도 굉장히 짜릿하고 신났다. 짧은 스릴이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짧기 때문에 즐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내내 떨어지기만 한다면 그건 아마 지옥행 열차 그래도 나에게는 이 정도 난이도는 돼야 돈이 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에버랜드의 T익스프레스만 타보면 우리나라의 무섭기로 소문난 놀이기구는 다 정복하게 되는 것이다! (당근 월미도 바이킹도 포함이다.)

 

그러나 짧은 스릴을 즐기기 위해선 반드시 긴 긴 기다림이 수반되어야 했다. 사촌오빠가 '매직패스'(테마파크계의 수강신청)를 성공시키기 위해 종일 매크로를 돌렸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뭐든 해야 했다. 서로 장난치고, 수다 떨고, 셀카 찍고, 간식 먹고, 각자 스마트폰을 보기도 하고. 나는 그틈에 놀이기구에 탄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내 시야에 들어온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일상에서는 이런 풍경을 보는 일이 흔치 않은데. 이곳은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환상의 나라'(사실 에버랜드 카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나는 진작에 글러먹었다.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고야 만다. 눈길이 닿는 모든 자리마다 페인트처럼 발려져있는 자본, 자본, 자본. 자연스러움을 온몸으로 거스르는 거대한 인공물, 이를 위해 자본은 모래성의 모래알만큼이나 필수적이었다. 최저임금을 받고 종일 뙤약볕에 서서 일하는 20대 초중반의 알바생들(출퇴근을 위해, 쉬러 가기 위해 이 드넓은 공간을 몇 번이나 가로질러야 할까? 그 사이에 길을 물어오는 손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친절한 대답을 해야할까?), 보기에도 버거운 화장과 옷차림을 하고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며 온전히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특히 이번 시즌은 개화기 컨셉을 표방하고 있었는데, 롯데월드 자체 컨셉과 버무려져 타겟층을 특정하기 어려울 만큼 산만하고 조악한 느낌이 났다. 타겟층은 도저히 모를 일이어도 이곳에서 누가 누가 호구 잡힐지는 빤해 보였다. 인스타에 올릴 인증사진을 찍으러 외모에 한껏 힘주고 나온 사람들(교복 입고 있는 사람들 중 절반은 진짜 학생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놀이공원을 찾은 부모들. 이미 누구라도 생수 한 병에 2천 원씩 하는 이 폐쇄된 공간에 입장한 이상 호구행 급행열차를 탄 것이겠지. 이곳은 각종 필터로 보정을 마친, 한 컷의 사진 속에서나 영롱히 빛나보일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놀이공원 안 갈 거냐고? 놀랍게도 그건 아니다. 나는 언젠가 다시 테마파크를 찾을 것이다. 소중한 누군가와 친목을 위해, 동심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놀이기구를 정복하기 위해. 다 알면서도 가는 거지 뭐...(이곳은 단지 집약체일 뿐. 어차피 자본주의의 병폐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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