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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칭찬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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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어느 날 같이 일하는 발달장애인 동료 Y가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온 것을 보았다.

 

"어? Y씨 양말이 짝짝이네요?"

 

처음에는 이건 뭐지 싶었지만 그게 나쁘게 보이기보다는

귀엽고 개성있어보여서 멋지다고 말했다.

당연히 진심이었다.

Y는 팀장님의 눈에 띄기 전까지 한동안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출근했다.

나는 팀장님의 지적으로 더 이상 Y의 짝짝이 양말 패션을 못 보게 되어 내심 아쉬웠다.

 

어저께는 발달장애인 동료 B가 유아용에 가까운 디자인의 귀마개를 끼고 퇴근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너무 귀여운 패션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아니, 왜 이렇게 귀여워요??? 너무 잘 어울리는 것 아녜요??!?! 귀여워서 미치겠네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내 성격이 좀 이렇다. 목소리도 웃음소리도 크고 일단 들떴다하면 실수 만발이다)

 

그날 따라 내가 유독 들떠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었다.

나는 평소 사람들의 과감한 시도를 좋아하고 거기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평소 수줍음이 많은 B는 내 칭찬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직원이 가고 난 뒤 상황을 지켜보던 팀장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팀장님은 내 흥을 깨지 않는 선에서 과한 칭찬에 대해 주의를 주셨다.

저 친구 나이가 벌써 이십 대 후반인데 '나이답게' 입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왜 나이답게 입어야 하지? 오히려 젊은 청년들에게 팀장님 세대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반발심이 들었다.

팀장님이 그렇게 귀여우면 나보고 저 귀마개 쓸 수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안 쓸 것 같다고 했다.

팀장님은 거봐라 너는 안 쓸 거면서 왜 저 친구한테는 귀엽다 하냐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그거야 저 귀마개는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맞지 않으니까...'라고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는 그렇게 반응할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귀마개는 아니더라도 나는 얼마든지 이상한 패션을 시도해볼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한 말을 가만 곱씹어보니 걸리는 점이 있었다.

잘 알다시피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처지가 많이 달랐다.

비장애인은 짝짝이 양말이나 유아틱한 귀마개 등을 패션 아이템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Y와 B는 자기가 걸치고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에 대한 계산이 없는 상태에서 입은 것이기에 엄밀히 말해 패션 아이템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나의 칭찬으로 인해 타인의 표준적인 시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강화될 수 있었다.

이것은 평상시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쁜 의도를 품은 사람 눈에 띌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의도를 실현할 대상으로 여길만한 작은 표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내가 크게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성"의 범주에 드는 사람들은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이 범주 밖의 배제된, 실격당한 소수자들에게는 이 범주 안에 드는 일이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과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보통의 한국인에게 결혼은 비교적 선택사항이고

비혼 비출산과 같은 급진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장애인, 보육 시설출신, 북한이탈주민 등에게 결혼을 통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일은 절실한 꿈일 수 있었다.

 

탈북민 동료 S가 직장동료 외엔 하객도 거의 없는, 조악한 모텔 예식홀에서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아는 가짜 부모님을 혼주석에 앉혀놓고 식을 올리는 장면을 보고

왜 이렇게까지 결혼을 하고싶었던 걸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를 통해 내게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수자를 배려와 존중으로 대하기 위해 때때로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한다.

타자화를 경계하면서도 차이는 인식해야하고. 

장애인 뿐만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 흑인 등도 마찬가지다.

이쪽으론 충분히 공부가 되었다고 자부했는데

알면 알 수록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오늘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지적장애 학생의 이해와 교육』이라는 책을 마주쳤다(우리 동네에 반품샵이 생겨서 처음 들어가봤는데 전자제품, 옷, 생활용품, 육아용품, 도서 등 별의별 물건이 다 있는데 가격이 매우 착하다).

지적장애 학생의 특성을 설명하는 파트에서 '작업 장면에서 직장적응을 방해하는 문제행동' 표가 있는데

여기서 '부적절한 개인적 습관이나 태도>단정하지 못하게 옷 입기'가 여기에 속하는 것 같다.

단정하다의 기준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부분을 읽고

그동안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엄청 많이 부끄러웠다.

공부를 위해 사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발달장애인 동료들 중에 정말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도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동안 발달장애에 대해 알고 싶어도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막연했는데 적절한 시기에 좋은 교재가 딱 등장해준 것 같다.

새롭게 알게 된 점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공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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