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가족에 대한 언급은 신중할 것
나는 친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한다.
얼굴을 못 본지도 수 년이 지났다.
연락이 끊어진 아빠가 어디서 굶진 않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이따금씩 떠올려보고 말 뿐이다.
그에게는 훌륭한 부분도 있었지만 장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는 우리 가족에게 영구적인 상처를 안겨준 구제불능의 범죄자다.
나는 최근에 친해지기 시작한 S에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꺼냈다.
아빠가 그렇게 자라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인 원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S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일 것이라 했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다 내 아빠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두고두고 아팠다.
아직도 아빠에게서 감정적으로 완벽히 분리되지 않은 것이다.
좋든 싫든 나는 아빠의 딸이고 그에게서 많은 특성을 물려받았다.
나와 가족구성원은 각자 개별적이고 고유한 존재임을 알고 있지만
아빠가 가진 결점과 한계는 내게도 해당되는(혹은 잠재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있는데도 말이다.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아빠 원망을 해왔으면서도
남의 입을 통해 듣는 건 아팠다. (정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빠에게 서사를 부여해야만 내가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기억도 있다.
전남친이 내가 기르고 있는 난폭한 고양이가 내 손에 상처를 낸 것을 보고
내 고양이에게 뭐라고 안 좋은 말을 했다.
그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는데
나는 내 고양이를 욕하는 그의 모습이 실망스러워 화가 났다.
고양이는 전남친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오랜 시간동안 내 곁에 있었다.
고양이가 난폭해진 데에는 아깽이 시절 엄마 젖을 너무 일찍 뗐었고
내가 양육에 미숙해서 장난감이 아닌 손으로 놀아준 잘못이 크다.
가족이 아닌 타인은 이런 맥락을 고려하는데 한계가 있다.
가족문제는 누구에게나 복잡미묘한 것 같다.
알아듣기 좋게 요약해놓은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히스토리가 생략돼있을지 모른다.
나 역시도 살면서 친구들에게 공감해준답시고 무수한 상처를 안겨준 것 같아 아찔했다.
절대로 남의 가족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겠다.
욕하는 건 물론이고 면전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분석하고, 진단내리는 행동도
상대의 기분을 한껏 끌어내릴 수 있다.
이렇게 멀어진 가족이 욕먹는 것도 기분이 묘한데
사이 좋은 가족에 대해선 오죽할까.
뭐든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깨닫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정신차렸으니 다행이라고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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