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기가 긴 취준생을 신입으로 채용하면 좋은 이유
졸업한 지 2년 만에 (공식적인) 첫 직장을 얻는 데 성공했다.
신입 인턴으로 취직한 지 두 달째, 아래는 그간 내가 들은 말들이다.
'우리 회사를 선택해줘서 고맙다'
'○○씨가 일 잘하고 있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독한 X'
'○○씨는 어쩜 그렇게 창의력이 좋아요?'
'○○씨가 200% 해주고 있다'
처음 한 달은 출근 스트레스가 '제로'였다.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나에게 일하는 주중과 쉬는 주말의 무게감이 신기하리만치 같았다.
그만큼 일이 내게 잘 맞았고 재밌었다.
또 몇 가지 특징적인 건 회사가 출퇴근 시간 합쳐서 30분 정도로 집에서 가깝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
무엇보다 대표님이 정말 좋은 분이어서 처음 업무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눈물이 핑 돌았더랬다.
계약서를 보고 '와' 하고 감탄이 터져 나왔을 만큼 철저히 노동자 중심의 계약 조건.
'어떻게 이런 회사가 다 있지?'
'내가 어떻게 이런 델 제 발로 걸어 들어왔지?'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대표님은 우리 회사를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면접 때 면접관님에게 받은 좋은 인상, 케미, 잘 맞는 유머 코드는 회사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내가 면접관에게 잘 보이는 것 못지않게 그들이 나의 직장상사로 적합할지 다각도로 평가해야 한다. 면접은 상호 평가하는 과정, 일종의 상견례라고 생각하자.
월급은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그건 (매우 중요하지만) 두 번째 문제고
내 청춘을 내다 바쳐도 아깝지 않게 느껴지는 일이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이 좋았고 나는 대표님의 목표에 '공감'해서 대표님과 같은 마음이 되어 일했다.
공감의 힘은 엄청난 것 같다. 일할 때 굉장한 동력이 된다.
하루하루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취준 할 때보다 시간이 10배 이상 빠르게 가는 느낌이었다.
몸은 조금 지쳐서 처음 한 달은 집에 오자마자 마사지기를 켜놓고 그 위에 누워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다음 날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지어 주말에는 빨리 월요일이 됐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실화다.
두 달 째인 지금도 처음 한 달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평일과 주말의 무게감이 비슷하다(어차피 출근 안 하는 주말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하면서 자기 계발해야 된다ㅜㅅㅜ).
나처럼 직장 생활한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어서 내가 왜 이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취준을 너무 오래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준 하는 동안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를 세 명이나 잃었다.
대학에서 알게 된 인연도 교수님 한 분 빼고는 연락처를 모두 지웠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대학생활 4년을 거쳐 딱 한 명 남은 것이다.
내가 잃은 사람, 내게 남은 사람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고 대인관계 교훈 몇 가지를 얻었다.
이때 얻은 것들이 내게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직장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이 뛸 듯이 반가웠고 모두 잘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 지난 관계들을 통해 배운 점들을 활용했고 새로운 관계 맺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흑역사는 확실히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취준 하는 동안 별의별 회사, 별의별 인간들을 다 거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회사, 지금 만난 좋은 사람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든 관계는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않은 대로 귀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취준 하면서 오랫동안 '쉬었기' 때문에 굳이 쉴 필요를 못 느끼고 있는 것도 같다.
주말에도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이 때문일까?(오래 가야할긴데...)
아무튼 그래서 기업에서는 공백기가 긴 취준생을 채용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쏟을 대상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공백기가 긴 지원자가 원하는 것을 주는지, 못 주는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결론: 공백기가 긴 지원자를 선발해서 기업이 손해볼 것은 딱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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