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내 인생 역대급 몰상식 면접, 공연예술센터 면접 후기

본문

반응형

※분노 주의

※분노 주의

※분노 주의

 

 

 

면접보러 가시는 분들... 정말 본인의 직감을 믿으셔도 될 것 같다.

평상시에 감이 잘 안맞는 편이라 해도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활동에서만큼은

이 직감이 최대치로 발휘될지 모른다. 에너지 보존 본능이랄까...

나는 면접을 앞두고 밀려드는 강력한 직감을 애써 외면하며 이번 면접에 임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면접 때 녹음을 못해둔 게 천추의 한이다(!!!)

 

나는 회사 위치나(회사가 강남에 있으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정도의 자본력이 있는 회사라고 판단하게 된다)

이름이 그럴듯해서(이름만 들으면 공공기관같다) 면접을 보기로 마음먹었는데,

회사 앞에 도착하자마자 절로 한숨이 나오고 심각하게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면접 오기 전에 검색해보며 로드뷰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그니까 내가 회사 건물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 건물이 바로 내가 면접을 볼 회사였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뭐...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겉모습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내가 회사 규모에 실망한 것은 눈이 높아서라기보다 출퇴근 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이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심리가 충족될 정도만 기대했음을 밝힌다)

회사에서 미인대회를 주관하는지 회사 건물 안팎으로 미인대회 현수막과 포스터가 다닥다닥 붙어있었고(참고로 나는 미인대회가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기서부터 나랑 코드가 아예 맞지 않는 회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ㅎ ㅏ... 면접 보나마나 답 나오는데 그냥 집에 가, 말어...?'

 

면접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쉬이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 이유는...

오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주말 아침 7시부터 일어나서 급하게 단장하고

버스와 지하철을 여러 차례 환승해가며 2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다니지도 못할 거리에 있는 회사를 난 왜 온 것일까. 취준생의 자책감이란......)

나를 묵묵히 지원해주는 엄마 생각이 그렇게 났다.

앞서 면접에 불참하거나 합격통보를 보낸 회사를 두 차례 반려한 바 있어서 죄책감도 없지 않았다. 물론 법정 최저임금도 안 쳐주는 회사들이어서지만.

친구도 이상한 회사 면접 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며 나중에 그런 회사를 거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일단 왔으니 경험삼아 면접을 보는 게 맞겠지. 엄마라면 틀림없이 면접은 보라고 했을 거야...낯선 사람의 질문에 답해보는 일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니까.'

 

내가 30분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사무실에 올라가기 전에 밖에서 확인전화를 드렸다.

간단한 질문에도 불확정적인 답을 주는 전화 목소리, 말투에서 이 회사는 도저히 아님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여기까지 온 시간이 아까워서 꾸역꾸역 계단을 올랐다. 

좁디 좁은 공간에 조악하기 그지없는 목조 인테리어,

그보다는 벽을 장식하는 미인대회 사진들 때문에 거의 돌아버리기 직전이었지만(...)

나에게 따뜻한 히비스커스 티를 가져다준 여자 직원분 덕분에 잠깐이나마 웃어보일 수 있었다. 

앉아서 대기하는 동안 지원자들이 들어왔다.

다해서 한 열댓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다들 정말 여기서 일하기 위해 모인 거예요? 저는 일단 여러분들의 경쟁자가 아니에요......'

 

면접장 특유의 냉랭한 분위기에 다른 지원자들에게 내면으로나마 아이스브레이킹 멘트를 건넸다.

여기서는 죽어도 일하기 싫은 마음으로 면접을 기다려야만 하는 심정을 누가 이해할까?

나에게 차를 건네주었던 여자 직원분은 속속 도착하는 지원자들에게 면접관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며

곧 도착하실 거라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면접관은 면접 시작 5분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 1분이라도 늦어봐라. 나는 그 즉시 면접 포기를 선언하고 용수철마냥 튀어나가리라. 

면접관은 면접 시작 1분 전에 나타났다. 후... 

 

남자분인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중년 여자분이었다. 썬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대기 공간이 좁아 열댓명이 다 앉지 못하고 몇 분이 복도에 서성이는데 대고

'아니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라는 식의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아니 그럼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문자는 누가 왜 돌리셨는데요...

나는 사소한 말 한마디, 어휘 하나에서도 많은 것을 알아채는 종류의 사람이다.

이곳에서 나는 '숫자 1' 혹은 복도에 쌓인 '짐짝'이 된 기분.

이쯤에서 기권하고 나갔어도 될 것 같은데 오기가 생겨서 그러지도 못했다.

 

'제발... 나 자신아 끝은 보자... 제발 겪어보지도 않고 예단하지 말자...뭐라고 하는지 들어나보자'

 

도착한 순서대로 한 명씩 들어가 1:1로 면접이 진행되었고 나는 두 번째로 들어가게 되었다.

면접장 문을 딱 여는데 아까 그 중년 여자가 빈 A4용지를 앞에 놓고

아까 들어올 때 쓰고 있던 썬글라스를 벗지도 않은 채 앉아있었다.

순간 '나 지금 사주보러 왔던가??' 헷갈릴 정도였다.

비좁은 창고같은 사무실에 탁자 하나 의자 둘, 기묘한 소품들이며, 이 분위기는 대체......? (정말 내 말이 참인지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 사진찍어 보여드리고 싶다)

면접은 됐고 이대로 사주나 보고 갔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때 탄 개털방석에 앉아 첫 질문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면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아래에 면접 내용은 최대한 기억 나는대로 재구성해보겠다.

 

 

 

부디 알아보고 거르시길......

 

 


산업: 연예/엔터테인먼트

주요사업: 공연예술기획/엔터테인먼트

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설립 6년차 중소기업

급여: 면접후협의

업무: SNS 홍보, 블로그 홍보, 보도기사 작성 등의 마케팅 업무

잡플래닛 평점: ★2.8


 

 

(ㅎ ㅏ... 내 인생에 이렇게 재미난 일이 일어날줄 알았으면 미리 녹음기능을 켜두는 건데......

정말 어느 회산지 제목에서부터 밝혀두고 싶지만 돈 많을 것 같아서 참는다.)

 

 

 

*면접 시작*

Q. ○○○씨... 전공했으니까 글은 잘 쓰겠네?

- 아, 하하... 

 

Q. 글을 잘 쓴다는 거야 못 쓴다는 거야. 대답이 시원찮아. 겸손인가? 자신감이 없어요? 

- (나름 반격) 꼭 그렇다기보다는 당연한 거라서요. (이력서 보시고 알아서 판단해야할 영역... 아닌가)

 

Q. (학교 이름 읊으며) 학교는 어디 있는 거예요? 

- (어디 있는지, 캠퍼스 위치 설명)

 

Q. 요즘에 학교가 너무 많아. 어디도 있고 무슨무슨 학교도 있고... 이름이 비슷한 게 많아가지고. ○○ 옆에 있는 그 학교인가?

- 네, 맞습니다. (참고로 인서울 국공립 4년제)

 

Q. ○○○씨는 정규직을 생각하고 온 거예요, 알바를 하고 싶어서 온 거예요?

- 정규직도 좋고 조건에 따라 알바도 괜찮습니다. (이것보다는 자세히 대답함)

 

Q. (갑자기 혼내기 시작) 일을 할 생각이 있으면 (일할 의욕이나 열정 없어보인다하는 류의 말들) 지금 뭐든지 애매하게 대답하고 있잖아. 일을 할 생각이 있으면 똑부러지게 대답을 해야지! 정직원을 하고 싶은 건지, 알바를 하고 싶은 건지 (블라블라) 안 그래요!

- 네. 맞습니다. (일할 생각 추호도 없는 거 들켰나)

 

Q. 포토샵 다룰 줄 안다고 돼있는데 어느정도로 할 줄 알아요?

- 사진 편집이랑 드로잉까지 가능합니다.

 

Q. 영상 프로그램은 다룰줄 알아요? 애프터 이펙트는?

- 직업훈련하면서 배운 게 있어서 프리미어 정도는 다룰 줄 압니다.

 

Q. 프리미어야 여기 온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다루는 거고. 애프터 이펙트 정도는 해야지?  보니까 집이 먼데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어요?

- 한 시간 반 정도 걸렸습니다. 

 

Q. 거기서 여기까지 다닐 수 있겠어? 내가 보니까 거리가 멀어서 정규직은 출퇴근 하기 어려우니까 다닐려면 알바를 해야겠네.

- (??출퇴근 하는 건 똑같은데 뭔소리지) 혹시 재택알바도 구하시나요?

 

Q. 재택알바? 우린 그런 거 안 뽑아. 일을 제대로 하는지 안하는지 확인이 안 되는데... 그래서 정규직을 하고 싶은 거예요? 알바가 하고 싶은 거예요?

- (구인공고에 정보가 없어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했음) 정규직하고 알바가 근무 조건에서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나요?

 

Q. ○○○씨, 일 안해봤어요? 사회생활 처음해봐요? (이력서 본다)

- 보시다시피 저는 대학 가기전에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정규직은 제가 일하는 자리 그니까... (이 회사에 뭘 기대해야할까 잠시 고민) 책상이 있다든가, 복지혜택이라든가...

 

[★킬포] 난 살다살다 알바한테 "복지혜택"이 있다는 얘긴 첨들어봤네??? ○○○씨, 아무래도 우리 회사랑 안 맞는 사람인 거 같다. 이만 끝. 탈락! (이력서 주며) 이거 가져가요. 자, 다음!

-네. (실실 웃으며 나간다)

 

 

*대략적인 면접과정 재구성 끗*

 

 

(웃음)(웃음)(웃음)

말해 뭐해...

 

 

면접은 기본적으로 상품을 사고 파는 과정과 비슷하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두고 벌이는 협상.

사는 사람은 최대한 싸게 사려고 하고, 파는 사람은 최대한 비싸게 팔고 싶어할 것이다. 당연하다.

고용주 입장에서 최대한 값을 깎아서 고용하고 싶은 마음과 노력,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면접 시작부터 끝까지 후려치기만 당한 것도 어이없었지만

그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어이없었던 것이 바로 마지막 멘트였다.

알바한테 복지혜택이 있단 얘기를 처음 들어본다니...??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알바생은 근로자가 아닌가?

그마저도 정규직과 비교해서 알아보고자 예를 든 것 뿐인데 내 워딩에서 어딘가 버튼이 눌린 것이 분명했다.

복리후생은 회사마다(특히 중소기업일수록) 천차만별이니 충분히 물어보고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너무나 뻔뻔하고 감정적인 태도에 나는 내가 알고있는 상식이 잘못된 것인가 순간적으로 되짚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읽고 내가 대놓고 성의없이 면접에 임한 거 아닌가 하고 의심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 분의 질문에 정말 성심성의껏 대답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느꼈지만 감정을 거의 표출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불합리한 조건이라고 깽판치고 나와봤자 나쁜 기분만 더 오래 깊이 남아서

오히려 나에게 손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면접을 보고 나와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멈추질 않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측은해지는 것이었다. 죽일 놈의 측은지심......

'자기 회사 별볼일 없는 거 자기도 너무 잘 아니까 갑의 입장에서 을이 불같은 열정을 안 보이고

붙잡을 경쟁력도 없으니까 제 선에서 쳐내는구나'라고 밖에는 더 생각할 수 없었다.

엄마가 보는 아침드라마를 옆에서 같이 보면서

'참나, 세상에 저런 crazy chick이 어딨어!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에서 마주치니까 너무 신기하고 반가웠다! 당신네들, 과연 현실에 존재하는 캐릭터였군요...?

지금이 내 인생에서 지독히도 안 풀리는 시기임에 분명하구나.

이렇게 또 한 번 확인했으니 그걸로 됐다... 유배당한 세월이라 여기고 버텨야지.

아무리 디플레이션의 시대라지만 어쩜 이렇게 후려치기가 극심할까?

내 스펙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 거고 알바 복지는 처음듣는 얘기?...ㅎ

설립 6년차에 알바한테 복지가 있다는 얘길 첨 들어본다니.

상식의 시대에 살고싶다.

구직활동 중에 자기가 일거리 주는 위치에 놓여있는 것을 대단한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내가 그 유명한 90년대생이라 그런가? 안타깝지만 그런 attitude, 코웃음이 난다.

 

고용주님의 진짜 권력은 고용한 직원에게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금액을 꼬박꼬박 입금해주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아시겠어요 You know what I mean????!!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