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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반전 거울 리뷰] 남이 보는 내 얼굴 확인하는 법(feat.안면비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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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면비대칭이 꽤 심한 편이다. 치아교정을 중도포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하악수술을 염두에 두고 교정을 시작했는데 수술했을 때 턱이 맞물리도록 더 틀어지게 교정해놓았으니 하관 쪽이 다른 사람들보다 비대칭이 심한 편이라고 봐도 될 거 같다(교정을 그만두니 반쯤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다). 나중에 다른 치과 의사 선생님이 진료 보시고 "(교합이) 아름답지는 않네요~" 하시던 말씀이 뇌리에 박혔다.

 

원래 사람 얼굴은 평균적으로 20% 정도가 비대칭이라고 한다. 다들 자기 진짜 얼굴을 볼 일이 없으니 별생각 없이 살다가, 증명사진 혹은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충격받아서, 혹은 거울로 봐왔던 내 모습과 다소 상반되는 외모 평가를 들은 것을 계기로 번뜩 안면비대칭에 눈을 뜨게 된다.

 

별생각 없이 살다가, 특정 계기로 집착하기 시작했다가, 한동안 포기하고 잊어버렸다가, 다시 꽂혀서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 낙담하는 식의 패턴이 오랜 기간을 두고 반복되었다. 필라테스나 경락, 혹은 성형으로 비대칭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지만 시간이 많이 들거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거나, 돈이 많이 들거나 하는 점 때문에 간단치만은 않다.

 

내 경우 누가 봐도 히스테릭해 보일 만큼 두 개를 거울을 맞대 놓고 수시로 들여다보는 걸로도 모자라 아예 반전 거울을 장만하려고도 했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일본산 제품 한 종류뿐인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남이 보는 내 얼굴' 어플까지 깔아가며 꾸역꾸역 실체적 진실을 마주했고 그때마다 우울감에 젖어들곤 했다.

 

 

재밌을 리 없잖아...

 

이 어플은 기능 자체는 좋은데 리뷰 팝업 요청이나 광고가 계속 떠서 불편하다. 또 카메라 어플인 만큼 거울처럼 활용도가 높지 않아 돈을 주고 결제하기는 애매하다. 그럼에도 다운로드가 100만 이상인 것을 보면  자기 얼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 같다.

 

내 진짜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람은 평생 자기 얼굴을 못 보고 죽는다고 한다. 아이폰 '후면'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에서 보이는 모습이 진짜 내 모습에 가깝다는 괴담도 있다.

 

 

 

 

그러나 카메라로 찍은 피사체에는 어느 정도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렌즈 초점 거리에 따라 얼굴이 이렇게나 달라지는데 당연히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는 거울 속 내 모습이 육안으로 보는 얼굴에 가깝지 않겠느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진보다는 거울 속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물론 거울에도 왜곡은 있다. 유독 날씬해보이는 거울, 뚱뚱해 보이는 거울이 있고 빛의 세기와 각도에 따라 느낌이 확확 달라진다.

 

 

옷가게 거울의 비밀.jpg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보이는 얼굴

 

조명의 중요성

 

그래요, 진짜 내 얼굴은 사람들의 마음 속 어딘가에 존재하겠네요.... (점점 멀어져 간다)

 

 

그렇게 또 생각 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쿠팡에서 생필품을 주문하다가 인기상품에 랭크된 반전 거울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거 괜히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잠시, 그래! 이거야... 어쩌면 거울 하나가 내 인생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감에 부풀었다. 자꾸 보다 보면 익숙해지든 꾸준한 개선의 노력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간에 효과가 있을 것만 같았다.

 

 

가격은 46,950원. 거울 치고 매우 비싸긴 하지만 중고거래가 활발히 되고 있고 쓰다가 마음에 안 들면 중고로 팔면 되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샀다. '수십 가지 화장품보다 제대로 된 거울 하나가 확실하지 않을까?'라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

 

 

 

 

 

 

이 제품을 만든 회사가 (주)오아시스랩스라는 정밀광학제조 스타트업인데 카이스트 출신들이 만든 회사인 듯하다. 카이스트 출신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대전에서 출발한 택배. 이때까지만 해도 뭐 대단한 게 오려나 싶었다.

 

 

마침내 택배 도착! 종이 거울이라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상자가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어서 놀랐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순간...

 

 

 

 

고양이가 나타났다! 두둥

누가 박스 귀신 아니랄까 봐.

 

 

 

 

뜯어놓고 보면 이런 거울이다. 종이로 둘러 싸여있고 각도가 비스듬히 뉘어진 형태

 

 

 

 

내 사랑 마시마로를 모델로 세웠다.

거울 속 모습은 반전돼있는 상태로 귀가 기울어진 방향이 반대다.

 

 

 

 

자세히 보면 거울 중앙에 경계선이 있다. 거울 볼 때 저 부분이 신경 쓰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눈에 안 띈다. 거울을 가까이서 볼수록 시야에서 사라진다. 

 

 

거울의 원리 자체는 카이스트까지 갈 것도 없이 매우 단순하다. 크기가 같은 거울 두 개를 한쪽 모서리는 정교하게 붙이고 반대쪽 모서리는 90도로 벌려놓고 단단한 종이로 고정시켜놓은 것. 상세페이지에서 광학용 거울 어쩌고 하길래 대단히 특별한 거울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일반 거울에 비해 먼지가 더 잘 붙는 거울이라는 것 정도만 알면 될 듯.

 

 

그런데 문제는 먼지가 잘 붙는 거울의 몸체가 '종이'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소재를 의식적으로 줄였다는 점이 기특하게 보인 건 사실이다. 플라스틱 대신 유리나 스테인리스 등으로 하자니 단가가 높아질 것이기에 나름 고민이 깊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는 불편하다는 결론이다. 물이 스며들지 않고 맺히는 재질로 하든, 생분해 플라스틱을 이용하든 뭔가 좀 획기적인 방법이 없었을까? 카이스트 출신이 만든 제품이 가진 차별점은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나야 했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이 거울은 애초에 보관을 잘하는 게 최선일 듯 싶다. 학교 다닐 때 새 교과서 포장하듯 싸맬까 생각도 해봤는데 귀찮은 관계로 내버려두기로 함.

 

 

포장 비닐을 씌워서 거울이 보이게 뚫어놓음 하하

 

 

나름 쓸 만은 한데 추천하기엔 좀 애매하다. 일단 종이거울 치고 가격이 쓸데없이 비싸다. 화장할 때는 머리가 좋아지는 거울(?)로 활용할 수 있다. 눈썹 하나 까딱까딱하는 것도 반전돼서 헷갈린다. 거울 앞에 지나다닐 때 거울 속 운동방향이 반대여서 외부인인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란다. 그래서 안 쓸 때는 뒤집어 놓는다. 나중에는 이런 거울도 흔해져서 다이소 같은 데도 싸게 깔리지 않을까. 

 

 

거울을 본 소감은... 그냥 뭐 익숙했다는 거. 원래 거울 두 개를 활용해서 반전된 얼굴을 확인하곤 했으니 그럴만하다. 다른 사람들 후기를 읽어보니 충격받아서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기도 한다고. 내 얼굴도 비대칭이 심하더라. 헤어라인도 소가 핥은 것처럼 어이없게 생겼고 눈썹도 짝짝이, 눈도 짝짝이, 입술도 삐뚤어졌고, 팔자주름도 한쪽만 깊고 뭐하나 똑바로 붙어있는 게 없었다. 그 모든 결점들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든 생각은...

 

 

'그래... 이게 나네.'

 

 

신기한 건 의외로 괜찮았다는 점이다. 삐뚤빼뚤 못난 이목구비를 뚫고 나오는 진짜 내 모습, 거기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를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거울을 앞에 둔 채 잠깐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는데 '아, 평상시의 내가 이런 모습이구나' 싶더라. 나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했던 사람들도 다 나름대로 그렇게 볼만한 이유들이 있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남이 보는 내 얼굴'에서의 '남' 역시 다양한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저마다 다른 기준과 경험들을 갖고 있는데 하나뿐인 내가 어떻게 일일이 다 맞춰주나. 중심을 불특정 다수가 아닌 나 자신에게 두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내 얼굴을 가장 많이, 오래 보아왔고 다양한 경로로 데이터를 쌓아온 만큼 정확도도 높지 않을까? 아마 내 무의식이 내 진짜 얼굴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추측이다. 단지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거울에 맺힌 상의 왜곡을 부추길 뿐.

 

 

덤으로 환하게 웃으면 모든 단점이 흐릿해져 보인다는 것도, 눈썹 하나만 잘 그려도 비대칭이 많이 개선돼 보인다는 것도 알게 됨.

 

리얼미를 접한 첫날, 하루 내내 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생각과 많이 다른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사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좀 쑥스럽기도 했구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낯설었던 모습이 익숙해졌고 내가 몰랐던 내 모습 속의 장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내 외모로부터 느껴지던 피해의식, 낮은 자존감, 상처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늘 마음 한켠에서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질문. '남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질까?'에 대한 답을 찾아 홀가분했습니다.

 

읽어보고 무척 공감됐던 기획자의 말이다. 이 거울을 받아보고 내가 한 경험 그 자체였다. 거울보고 틀림없이 우울해지겠다 각오하고 있었는데 예상외였다. 이것이 리얼미거울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랄까.

 

 

기어이 거울까지 사놓고 이런 말 하면 진짜 우스워질지도 모르지만 얼굴이 대칭이 조금 안 맞고... 이건 인생에서 중요한 게 아닌 거 같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존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 완벽해지고 싶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것.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거울을 샀기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라서 적어본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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