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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적병(증)으로 공황장애 증상 경험한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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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난다. 대학교 때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과제하는데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한 쪽 손이 저리면서 온 몸에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아득하고 어지러운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어떤 느낌이냐 하면 이대로 가만 있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느낌, 쓰러질 것 같은 "끔찍한 느낌"이 들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제자리 뛰기라도 해야했다. 그러면 곧 좋아졌다.

 


처음에는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가보다, 혈액순환 장애 같은 건가보다 싶었다.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나진 않았지만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타나는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제자리 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증상이 나타날까봐 남몰래 공포에 떨었다.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님께 증상에 대해 여쭤봐도 잘 모르시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셔서 더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다 새해 들어 이 증상이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눈치를 못 챘는데 곰곰이 복기해보며 기록해보니 "식후에" 이 증상이 나타난다는 걸 알게됐다. 이걸 토대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담적병(증)이라는 게 있었다.



담적병(증)은 한의학에서 내리는 진단인데 손 저리는 것부터 두통, 어지러움까지 너무 내 증상과 똑같았다. 안그래도 요 며칠 위장 통증이 심해진 상태여서 구토도 하고 며칠이 지나도 체기가 내려갈 기색이 없이 종일 명치가 돌덩이마냥 무겁던 중이었다. 어제도 갑자기 손저림과 함께 정체모를 어지럽고 아득한 느낌에 이러다 곧 쓰러지겠다 싶어 요가매트 쪽으로 갔다. 갑자기 쓰러지면 머리가 다칠 수 있으니까(1인 가구라서 누가 돌봐줄 수 없다) 요가매트 위에 엎드리고 의식을 잃었다(잠들기까지 과정이 기억에 없다).

 


몇 분 뒤 깨어났는데 그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마치 온 우주에 나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 두려움이었다. 엄마 목소리 듣고 싶고 같이 살던 가족들이 그리운 것은 물론 독립적이고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내가 별안간 배우자가 있어야할까 종교를 가져야할까 생각했을만큼 무서운 느낌이었다(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를 단번에 이해했다;;).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느낌인데 병명조차 모르니 도대체 답이 안 나왔다. 근데 이게 다 위장기능 때문이었다니... 자기 병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모든 퍼즐이 끼워 맞춰진 느낌이었다.

 


위장기능으로 고생한지 10년이 넘었다. 담적병(증)이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신경성 위염이다.

검사 시 이상이 없다 / '고질병' / 절대 죽지 않음(ㅋㅋ)



대학시절 내내 신경성 위염 약을 달고 살았다. 여드름은 입 주변에만 나서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아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졸업하고 채식을 시작했는데 채식은 위장이 약한 내게 신의 한수였다. 채식을 하면서 입 주위 여드름도 깨끗해졌고 평생 내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던 만성피로에서 완전히 회복되는 듯 했으나 여전히 찬 음식, 탄산음료, 커피, 밀가루음식,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고 좋아하는 탓에 위장병이 재발한 것이다.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더 방심한 것도 있었다.

 


위장병이 재발이 쉬운 이유는 회복이 되면 다시 기분이 업되고 식욕이 돌면 또 아무거나 마구먹기 때문이다. 기름진 음식, 자극적인 음식은 무조건 피하고 한식 위주로 먹어야 한다. 이번에 나를 체하게 만든 음식은 "불은 당면"이었다. 명치가 꽉 막히고 위장 운동성이 저하되면 담적이 심장을 압박해서 두통, 현기증, 호흡곤란을 일으킨다고 한다.

 


공황장애 비스무리한 증상을 겪어보니 와... 이 공황발작이 단순히 어떤 느낌에 사로잡히는 증상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너무 무섭고 평소 갖고 있던 신념을 뒤흔들 정도의 위력이었다. 연예인들이 공황장애 많이 겪는다고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이니까 이쯤이야 뭐 하고 가볍게 보지만 이게 결코 가볍지 않겠더라... 이 증상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과연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니 살 것 같았다(실제로 샤워가 날 살렸다). 명상, 심호흡도 도움이 되더라. 담적병 상태에서는 물만 먹어도 체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위염 약을 타러갈때면 의사쌤은 늘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했었다ㅋㅋㅋㅋ 근데 배고프면 집중이 안 되는 걸..


-따뜻한 레몬물
-사과


요 두 가지만 속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배고플 때는 브로콜리 스프 먹어야지. 대용량으로 만들어서 소분해서 얼려놔야겠다.


두유 넣고 끓인 브로콜리 스프 짱맛♡
아침점심으로 먹을 당근+단호박죽♡ 위장아 좋아져라



이 놈의 위장 장애... 새해에는 확실히 뿌리 뽑아야지. 건강을 잃는 것은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것이다. 아플 짓을 하지 말자.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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