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하늬 채식중단이 이해되는 이유; 채식주의자를 이해하는 법

본문

반응형

이하늬님은 2년 전쯤 한 인터뷰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중단하지만 여전히 지향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에 예능에 나와서 고기를 먹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그 영상 댓글에 언제는 채식주의자라고 하지 않았냐, 변절이다 라는 반응까지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일반인으로 조용히 4년 동안 채식을 해오면서 생활양식, 대인관계 등 일상에서 전반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이하늬님은 연예인으로 대중들 앞에 채식주의자임을 알리고 유지하면서 얼마나 많은 말 못할 고충들이 있었을까 싶었다.  나는 이하늬님을 가깝게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채식지향인로서 너무나 이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채식주의자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할 것은, 채식을 하는 이유와 방식이 저마다 너무나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를 검색하면 채식주의자 종류가 세세하게 분류되어있지만 실제로 채식을 경험해보면 거기서 얼마든지 더 세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육식 그 자체보다는 '공장식 축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채식을 시작했다면, 드넓은 풀밭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자란 소와 돼지의 고기는 먹을 수도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보다 '소비'하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내 돈 주고는 안 사먹지만 누군가 사준 고기는 먹을 수도 있다. 또는 고기를 집에서만 먹고 밖에서는 안 먹는, 혹은 반대의 경우도 꽤 있다. 그래서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며 채식을 하는데도 남들이 봤을 때는 '채식주의자라면서 왜?'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채식의 방식이 이토록 다양하다보니 채식주의자들마다 건강 상태도 다르고 이러저러한 오해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나도 직장을 옮기고부터는 오해가 될만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식사하는 경우(특히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거나 일적으로 잠깐 만나는 사람일 때) 굳이 채식주의자라는 표현을 쓰기보다는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식으로 에둘러서 말하는 편이다. 집에서는 거의 비건지향이지만, 외부 상황에 따라 페스코와 비덩주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일단 나부터가 한 가지 분류로 딱 떨어지지가 않는다.

 

 

덩어리 고기는 (실수가 아닌 이상) 어떠한 경우에도 먹지 않지만, 밖에서 육고기 부산물이 들어간 음식을 권유받을 때 거절하기 난감한 경우가 많다. 음식을 권유받을 때 '아, 이거는 거절하면 상처받으실 것 같다'는 직감이 드는 순간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밥의 민족이라 칭할만큼 밥을 주제로 소통하는 일이 많다. 내가 권하는 밥이 곧 나라서 내 밥이 거절당하면 내가 거절당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특히 우리 할머니, 어머니 세대).

 

 

이럴 때는 그냥 여러 말 없이 먹어주는 편이 서로 속 편하다. 그래서 누구랑 있을 때는 안 먹더니, 누구랑 있을 때는 먹더라는 뒷말이 나올 수도 있다. (내가 만약 연예인이었다면 이런 상황들이 낱낱이 대중들 앞에 공개됐을 것이 아닌가? 과연 좋은 평가를 들을 수 있을까?) 

 

 

꼭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100% 비건으로 살아가기란 메이드 인 차이나 또는 플라스틱 제품을 피하는 일만큼이나 어렵고 고단하다. 

 

 

연예인들은 대중 앞에서 한 말을 지키기 위해 더 강박적으로 되기가 쉽다

 

 

내 소신을 고집하기보단 주어진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편이 나부터가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원래도 어렵지만 여기에 채식까지 더해지면 한층 더 복잡하게 꼬인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그런데 연예인이기까지 하다? 이들이 겪는 고충은 훨씬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다.

 

 

이하늬님은 애초에 채식을 시작한 계기가 고기를 못 먹는 가족 구성원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출산, 건강 등의 이유로 언제든지 채식을 중단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나는 이 인터뷰가 100% 진실이라기 보다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이 활달한 이미지에 너무 배치되거나, 다채로운 연예 활동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유연함을 강조한 발언일 수 있다고 보았다).

 

 

채식 중단 소식을 알린 인터뷰에서 "채식을 하더라도 ‘채식주의자’라고 단정 짓지 않고 있다. 자유로워지려고 채식을 했던 건데 오히려 나를 가두는 틀이 될 때도 있었다. 강박이 되고 속박하게 되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지닌 의미를 너무 잘 알 것만 같았다. 

 

 

직업적인 면에서 고충도 만만찮았을 것이었다. 광고 모델로서도 어렵지만 배우라는 독특한 직업적 특성때문에 겪는 고충이 있다. 배우는 작품을 할 때마다 주어진 캐릭터를 옷을 입고 벗는 것처럼 변신이 필요하다. '나'라는 에고를 내려놓고 작가와 감독이 의도한 바대로 움직여주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다.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나는 채식주의자이지만 내가 연기하는 배역은 채식주의자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배우 자신도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애초에 배역이 '정육점 사장님'이면 대본을 받아보기도 전에 미리 피할 수 있겠지만, 레스토랑에서 대접받는 자리 혹은 친구들과 술자리를 연출하는 장면에서 배우 자신이 소신을 내려놓지 못하면 부자연스럽고 애매한 그림이 연출될 수 있다.

 

 

세상에는 채식인보다 비채식인이 훨씬 많고, 고기를 안 먹기 위해 쏙쏙 골라내는 것 보다는 앞에 놓인 고기를 쌈싸서 맛있게 먹는 편이 '일반적'이다. 작품은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재현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피할 수 없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클수록 내면의 갈등은 깊어질 것이다.

 

 

나도 최근에 공모전에 낼 작품을 준비하면서 내가 쓴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전부 채식주의자화 되는 것을 보고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면 고기 먹는 장면을 넣지 않는 것까지는 충분히 가능했지만,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을 채식주의자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정말 능력있는 작가였다면 고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작품을 어색함 없이 잘 쓸 수 있었겠지만, 매 작품마다 이렇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예인들의 말 한마디, 토씨 하나조차 악의적으로 보도되기 쉬운 언론 환경에서 이런 속사정을 일일이 해명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애써 해명한다 해도 채식에 대한 이해가 없는 대다수의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이하늬님은 2010년에도 케이블 방송에서 고기를 먹는 장면이 있는 줄 모르고 촬영에 임했다가 소속사를 통해 당시 고기를 입에 넣고 삼키지는 않았다는 해명을 내야했다. 이 경우 채식인과 비채식인 모두에게 욕을 먹을 수 있다. 지금보다 채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 시기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나는 이하늬님이 앞뒤가 다른 행동을 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생활하면서 소신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효리님도 채식을 하면서 방송출연에 많은 한계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비건인 김제동님도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에서 다같이 치킨을 시켜먹는데 혼자만 못 먹고 있는 상황이 오디오에 잡힌 적이 있다(자막이 없어서 대부분 못 듣고 지나쳤겠지만 나는 그 장면을 유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도 다 같이 컵라면을 먹는 장면에서는 함께 컵라면을 먹었다. 그 컵라면 스프에는 고기와 해산물의 분말이 포함돼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라면을 안 먹겠다, 혹은 채식주의자용 컵라면을 달라고 말하기는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프로그램 자체에 광고나 협찬이 개입돼있는 경우 출연진으로서는 더욱 골치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채식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이 정말이지 존경스럽고 그 기간이 얼마가 됐든 박수를 쳐주고 싶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