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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교육제도가 부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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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뜻한 색, 블루

 

나는 이민을 꿈꾼다. 갈 수만 있다면 프랑스로. 이민 생활이 흔히 상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존중받고 있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결혼하거나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지만 프랑스로 간다면 바뀔 가능성이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위는 주어진 삶의 조건에 약간이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세월호 사건, 강남역 사건, 구의역 사고...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교육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첫 시퀀스였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한 작품을 놓고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몇 문장씩 나눠 읽고 선생님이 묻는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이상하게도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장면이 뇌리에 박혔다. 한국의 고등학교 국어시간처럼 한 작품을 읽고 한 가지 해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작품을 읽고도 어떻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괴감이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프랑스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훔쳐다놓고 싶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말의 참 뜻을 알지 못했다. 순진했던 나는 학교에서 나름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준다고 믿었다. 또 그래야만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20대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이를테면 돈, 사랑, 죽음 같은 것 말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 나는 갓 태어난 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무지하고 형편없었다. 철저히 홀로 쌓고 무너지며 겪어내야 겨우 한 단계씩 넘을 수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 국어시간에 배우는 시에는 잘못이 없다. 시 한 편을 읽으면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자기 삶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교육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서는 똑같은 정답을 고르지 않으면 실패자 취급을 받는데 그 똑같은 정답이 반드시 정답이라는 보장이 없다. 어느 시인이 자기가 쓴 시가 출제된 언어영역 문제를 전부 틀린 것이나, 영미권 사람들이 외국어영역 문제를 두고 분명 자기 나라 말인데 해석하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는 그 황당한 시험이 바로 수능이다. 이를 두고 학생들이 미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인데 당장 미치거나 세월이 흐른 뒤 미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tvN

 

 

내가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늦지않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실현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마련되는 것이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안다해도 생계에 묶여 쉽사리 발을 뻗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 책임이 많은 부분 교육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교육 제도를 변화시켜야하고 그 모델은 프랑스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세상에 똑같은 눈송이는 없다(No two snowflakes are alike)'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하고 또 필요한 것이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이고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기에 행복한 사회이다. 그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열쇠는 바로 교육제도인 것이다.

 

[2016.12.16]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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